| 제목 | [충청투데이]"위기마다 사람의 힘으로 버텨…함께 했던 사람들 기억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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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서명 | 홍보팀 | 등록일 | 2026-04-20 | 조회 | 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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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마다 사람의 힘으로 버텨…함께 했던 사람들 기억나"
[충청투데이 오민지 기자] 백세를 목전에 둔 그에게 99년의 시간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다. ‘빵 총장’, ‘나비넥타이 총장’, ‘작은 거인’, 그리고 ‘지역의 큰 어르신’. 따라붙은 별칭들은 그가 지역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를 보여준다. 건양교육재단 설립자이자 건양대학교 명예총장, 건양의료재단 김안과병원 이사장인 김희수 총장은 끝내 남은 것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허허벌판에서 시작해 학교와 병원을 일구고 위기도 사람과 함께하며 버텨왔다. 인재를 길러내고 지역이 행복해진다면, 그는 백세 인생에서 더 이상 바랄 것 없다고 한다. 이날 김 총장은 화려한 성공담 대신 담담한 고백을 꺼내놓았다. <편집자주> -지역에서 많은 성과를 이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자랑할 인생이 어디 있나. 참 숨 가쁘게 살았다. 굳이 자랑이라 한다면, 건양대학교라는 학교를 세우고 개교한 순간일 거다. 막상 이 넓은 터를 보니, 어떻게 채워야하나 막막함이 먼저였다. 그래서 엄청난 토목공사부터 시작했다. 허허벌판 같던 공간에 병원을 세우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와 돌아보니 성과나 업적보다도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더 뚜렷이 떠오른다."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은 것이 있었나. "‘꿈 너머 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별히 목표를 정해두고 살아온 건 아니고 그저 살다보니 백을 앞두게 됐다. 의사로서의 꿈이 있다면 ‘좋은 의사’가 되는 것. 그 후에는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일, 그게 내게는 ‘꿈 너머의 꿈’이었다고 본다." -그간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은사님을 비롯해 공직에 계신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간관계라고 본다. 일을 해보면 알겠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병원을 지을 때는 IMF를 겪으면서 큰 어려움도 겪었다. 병원을 막 세우는 입장에서 위기감이 컸지만, 도와주신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이후 메르스 사태 때도 어려웠지만 돌이켜보면 병원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위기의 순간마다 사람의 힘으로 버텨왔고 그래서 더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으로서 어떤 마음이 드는가. "솔직히 말하면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는 늘 밖에 있었다. 병원과 학교, 해야할 일이 끝이 없었다. 가족은 늘 다음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곁에 충분히 있지 못했다.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유학을 떠날 때 어린 딸을 두고 떠났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잘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어준 사람이 아내였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를 했지만 아내는 한국에서 생계를 책임지며 아이를 키웠다. 그 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면목 없다." -지금도 구성원의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많이 외웠다. 간호사들 이름도 외우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학생들하고도 가까이 지내려고 했다.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에 가서 밤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빵이랑 우유를 사다 주곤 했는데, 참 좋아하더라. 그래서 ‘빵 총장’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나중에 졸업한 학생들이 ‘건양하면 빵을 나눠주던 총장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해준다." -건양대학과 병원이 지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보고 있나. "조직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의 총장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 조직이 지역에서 사랑받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게 ‘정직’이다. 어디를 가든 ‘조직의 키’를 거머쥘 수 있을만큼 신뢰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 사장이 금고 열쇠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해왔다. 실제 그런 역할을 맡아 사회에 자리잡은 졸업생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건양’이라는 명칭을 쓰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학원을 열 당시 ‘건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 ‘건양’은 공자가 머물며 많은 제자를 길러낸 곳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알고 있다. 삼천 제자를 길러냈다는 이야기처럼, 인재를 키워내는 공간이라는 엄청난 뜻이 있다. 여기에 ‘세울 건’과 ‘기를 양’의 뜻도 담겨 있다. 학교를 세우고 사람을 기른다는 의미다. 그 뜻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건양대는 논산에서 시작됐는데, 병원을 대전에 설립한 이유는. "이야기가 꽤 길다. 왜 병원을 대전으로 옮기느냐는 반발이 적지 않아 입장이 곤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논산 여건으론 대학병원을 운영하기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 설득을 거쳐 대전으로 옮겨왔다. 땅이 없어 땅을 보러다니고 큰 땅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대전으로 온 것도 있다. 그때는 상급종합병원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런 목표를 두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건양대 부속병원, 말하자면 2차 병원 비슷하게 출발했다. 돌이켜보면 행운이다." -건강을 오래 유지해온 비결이 있다면. "비결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움직이려고 했다. 요즘도 하루를 시작하면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수영을 하며 일과를 이어간다. 또 하나는 마음을 무겁게 두지 않으려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머무르기보다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꾸준히 움직이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것. 그런 기본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준 힘이 된 것 같다." -백세를 앞두고, 후배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쟁에 참전도 했고, 유학도 다녀오고, 세상 돌아가는 일은 웬만큼 경험하며 재미나게 잘 살았다. 그 이상 더 어떻게 잘 살겠나. 나라가 잘 되고 지역이 발전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출처: 충청투데이 (https://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8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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